[석실 방문기 - 1] 출처:달마수석 탐석여행
작성일 : |
2005-06-11 오후 4:42:00(몽석 이구락님) |
정선 최원규 님 석실
누가 멋을 부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고 했지만, 소문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기 일쑤다. 언제나 우리 모두의 고향 같은 강원도, 그 중에서도 칡덩굴처럼 얽히고 설킨 수많은 전설이 아리랑 가락에 실려 세상 밖으로 퍼져나온 정선, 이 산자수명한 정선 땅 나전 조양강 가에 수석인 최원규 님이 살고 있다. 그의 이름이 달마수석에 몇 번 비쳤지만 그는 아직 회원은 아니다. 태백의 동강님, 평창의 호석님과 친하다보니 그의 소문은 나에게까지 전해졌고, 2005년 5월 1일 직장 수석회, 한 주 건너 15일 달마정탐으로 연이어 정선을 찾았고, 그때마다 최원규 님의 안내를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는 작고 예쁜 전원주택을 지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노루 같이 뛰어노는 두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북평초등학교에 근무하며 시간이 나면 대부분 탐석 삼매경에 빠지는 진정한 애석인이다. 그의 집 울타리는 담장 대신 키낮은 회양목과 숙암천 문양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저녁 마당의 호스로 돌에 물을 치면 그의 집은 아름다운 무늬의 돌이 부시시 깨어나 자태를 뽐내는 황홀한 꽃밭이 된다. 숙암 칼라석 사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수림석이야말로 물을 맞으면 운치있는 수묵화가 된다. 나는 첫 방문 때 이 수림석의 매력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그는 화단석과 정원석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화단석은 혼자 들고올 정도의 크기로 화단가를 장식할 돌이고, 정원석은 장비가 동원되어야 옮길 수 있는 큰 돌이란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그의 마당을 자세히 살펴보면 석질이 몇 종류밖에 안됨을 쉬 눈치챌 수 있다. 이는 그의 탐석 활동이 해석을 제외하곤 고향땅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숙암천 황칼라석, 노을석, 수림석, 간혹 미석 또는 꽃돌로 불릴만한 것조차 오대천에서 동강까지 정선땅을 벗어나지 않는 듯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통유리로 마당을 내다볼 수 있는 응접실에도 여러 종류의 수석장이 딱 알맞은 위치에 제자리를 잡고 있다. 수석 한 점 한 점이 다 수준급이다. 역시 대부분 정선 돌이다.
2층 다락방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은 좁고 가팔랐지만, 조심조심 오르면 그곳에는 한 수석인의 오랜 꿈과 열정이 빚어낸 돌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 석실이 없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석향이 피어나는 이상향이다. 그는 이곳에 올라오면 잠시 가족들과도 격리되어 그만의 휴식처가 된다고 한다. 담배 한 대 피워물고 강쪽을 내다보면(지금은 홍수방지 공사로 강둑이 높아져 강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강 건너 푸른 산이 성큼 다가선다. 이 얼마나 부럽고 아름다운 공간인가. 이곳이라면 나의 수석좌우명인 '虛心友石'을 걸어놓고, 말 그대로 '마음을 비우고 돌과 벗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싶어진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 석실의 남, 동쪽 두 면은 석장이고, 또다른 한 면은 수반돌을 진열한 선반이 차지하고 있다. 남쪽 벽면은 주로 해석인데, 그의 주 해석 탐석지는 가까운 동해 월천리 일대이지만, 이따금 서해 태안반도 쪽으로도 다닌단다. 동쪽 벽면은 정선의 관통석과 감자석이 각각 수석장 하나씩에 가득 차있다. 그의 고향사랑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10여년 후 퇴직을 하면 조그마한 수석가게 하나를 낼려는 꿈을 갖고 있다. 애석인 중에는 소장가에서 나아가 가게를 열어 수석인의 사랑방을 마련하는 이들을 더러 본다. 탐석에 열중했던 분들은 석상(石商)의 분위기를 가지지 않아 정감이 간다. 아마 80% 이상을 자탐석으로 꾸미는 가게주인이라면 더욱 친밀감이 느껴지리라. 그는 그때를 대비하여 박스에 담아 창고에 보관하는 수석도 상당하다고 했다. 그의 꿈이 하나하나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석실을 가진다는 것은 삶의 여유 이외에도 돌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원로는 거실에 딱 한 점만 연출해 놓는가 하면, 또다른 어떤 원로는 대문에서 마루를 거쳐 서재에 이르기까지 돌에 파묻힐 정도인 경우도 있다. 어느 것이 바른 애석인의 자세인지는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연출이란, 자연이 빚어낸 수석이란 예술품을 인위적으로 돋보이도록 좌대에 앉히거나 수반의 정갈한 모래위에 얹어 다시 알맞은 공간에 정성스럽게 배치하는 것이므로 여러 점을 같이 두면 우열이 비교되어 순수한 감상이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그에게 넌지시 달마수석 가입을 비춰보니 디카도 아직 장만하지 못했다고 얼버무린다. 어디에 얽매이는 게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까지 단체 가입은 지역의 단위수석회에 딱 한번 몸담아 본 게 전부라며, 그때도 탐석은 제대로 하지 않고 놀기만(?) 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진정한 탐석꾼이자 순수한 애석인이다. 이런 분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석 상인으로서 성공 여부를 떠나, 그가 정선이나 나전 어디쯤에 가게를 내면 제일 먼저 달려가 축하를 해주고 싶다.
최원규 님의 강원도 억양은 참 정겹다. 앞으로는 아마도 1년에 한번쯤은 정선땅을 밟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선에 그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