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선아라리 동강 15x18x6
실로 오랜만의 정선길이었다.
예미에서 동강으로 향하는 고개를 넘으며 정선에의
초행길의 기억을 떠올린다.
진도아리랑에 반해 무작정 진도로 내려가 당시 최고의 소리꾼이던 전곡례 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며 들려주시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며칠을 지낸지 얼마 되지 않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할머니의 육자백이 가락이 섞인 그
거칠고 투박한 남도 소리에 젖어 있었다. 민요연구회 동아리 방에 들어섰을 때 낮선 손님이 와 있었다. 강원도의 어느 대학 민요동아리의 회원이고
우리 동아리의 선배와 친구 사이여서 다니러 왔다는 그녀는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해맑은 웃음과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민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금방 서먹함은 사라지고 자연스레 막걸리파티로 이어졌다. 막걸리가 몇 순배 돌고 앳된 얼굴들에 홍조가 들 무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민요 한자락 씩을 부르게 되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 앉은 채로 정선 아라리를
불렀다.
명사십리가 아리라며는 해당화는 왜 피고
모춘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 주게
카랑카랑하면서도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는 끊어질듯 이어지며 메나리의 곡조를 타고 있었다. 모두가
숙연해 지며 좌중이 고요해 졌다. 나는 왠지 모를 울컥 하는 것이 명치끝에서 밀려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슬프고도 애잔하면서도 한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정선은 나의 마음속의 동경향이 되어버렸다. 그해 여름방학, 벼르고 벼르던 정선길에 올랐다.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선행 버스를 타고 아침부터 저녂까지 달려 자그마한 시골마을 평창을 지나 비행기제를 넘어 정선으로 들어오니 이미 날은 다
저물어 버렸다. 정선읍내의 작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날이 밝는 대로 일찌감치 여관을 나서 여량행 버스에 올랐다. 털털 거리며 먼지를 날리고
신작로를 가르는 버스는 굽이굽이 정선강의 줄기를 타고 내달리고 있었다. 여량에 도착하여 아우라지 강가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이내
갑자기 허전함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그저 그런 강가일 뿐인 아우라지에는 황량함 마저 감돌았다. ‘이것을 보려고 이렇게 하루 종일
달려 왔는가....’ 무언가 근사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서 깨어났을 때 밀려 드는 것은 그저 허전하고 쓸쓸함 뿐 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후 나는 여러 차례 정선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문화재 답사팀들과 정선 주변의 폐사지를
둘러보는 답사여행도 여러 번 했고 일본의 역사 선생님들과의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는 여행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방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첫
번째 방문의 여운으로 정선하면 그저 그런 볼 것이 별로 없는 곳, 또는 황량하고 쓸쓸한 곳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그런데 횟수를 거듭하며 정선에
다녀올 때마다 뒤돌아 오는 나의 발걸음 속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자꾸만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리랑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그러한
황량함과 쓸쓸함이 바로 정선 아라리를 만들어 냈고, 또한 정선 아라리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아름다움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깨닳았다.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약 200여종의 아리랑이 존재한다. 그런 아리랑의 원형은 단연코 정선 아라리라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왕조가 망하자 정선사람 이초(李初)의 고려 부흥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초의 문인이던 전오륜이 자신의 지인 6명과 함께 정선땅으로 내려와
서운산에 은거하며 한시로 자신들의 망국의 한을 달래게 되었는데 이것을 우리말로 번안하여 민중들이 노래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이 정선아라리의
시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선 아라리에 송도(개성)에 있는 만수산이 등장하고
조복을 갖춰입고 서산에 높이 올라
송경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운다
요순성대 간 곳 없으니 몸둘 곳을 몰라라
라는 가사가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이다.
전세계에 전해지는 산간 민요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정선아라리는 높은 음역을 사용하고 끊일듯 이어지며 떨림이 심한 메나리조의 노래이다.
그러한 노래는 이미 이 지역 민초들 사이에 널리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차로도 거의 하루 종일을 달려야 하는 첩첩의 산간벽지요, 한번도
역사의 중심에 서 본적 없는 소외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자신의 한숨에 시름을 섞어 쏫아 낸 노래가 바로 아라리인 것일 것이다. 그들은
아리랑이라 부르지 않고 반드시 아라리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처지를 알아 달라는 ‘아라리 아라리 알아주오’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한
아라리에 고려왕조의 망국의 한이 은거칠현들의 한이 더해져 아라리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라리는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한번
만들어지면 거기에 많은 이야기들이 더해지고 또한 새로운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낸다. 아우라지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나누다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린
여량 처녀와 송천 총각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좀건내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모두떨어지네
등의
가사가 더해지고
임진왜란시 이 지역의 처녀의병장 정윤과(그녀가 백정인 아버지와 기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천민이었다는 설도 시사하는
바가크다)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일본군 사이카화포대의 마고이치 두령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도 더해지고
‘오라버니 장가는
내년에나 보내고 검정소 딱딱 팔아서 내 시집이나 보내 달라’는 산골 처녀의 투정까지 더해져 정선아라리의 가사는 지금까지 채록된것만 1500여수에
이른다. 그야말로 아리랑은 우리 민초들의 애환이요 비나리며 살아 숨쉬는 역사이다.
정선 아라리 만큼 아름다운 노래가 또
있을까... 비라도 쓸쓸히 내리는날 유영란선생의 그 낭낭하면서도 구슬픈 긴 아라리 가락을 듣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엮어내어 그
아픔과 슬픔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에 젖을 수 있다.
그런 아라리가 있기에 정선은 내 마음속의 고향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
정선이 이제 나에게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탐석지로서 또 한번 더없이 소중한 곳으로 남게 되었다. 간간히 나와 주는 아름다운 문양석이랑,
돌밭을 헤매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면 사방 어느 곳이나 할 것 없이 하늘에 닿을 듯이 이어지는 끝없는 동강 하늘벽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 고개를 넘어 동강가에 닿으니 숙암님께서 반겨 주신다. 이번 여행은
탐석여행이라기 보다는 숙암님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뵙게 된 숙암님은 너무나 반가이 반겨 주시며 하루 종일 동강 이곳저곳을
돌며 소중한 돌밭을 소개해 주시고 석질과 자주 나오는 작품에 대하여도 소개해 주셨다. 나는 탐석보다는 님과 돌밭을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간간히 예쁜돌이 있으면 주워서 선듯 내게 건내 주셨다. 저녁을 함께하고 숙암님댁에 가서 아름답고 훌륭한 소장석들을 감상하고
양양산의 아름다운 해석들도 선물로 받았다. 첫 번째의 만남이지만 마치 오랫동안 사귄 형님을 뵌듯하다.
숙암님과 사모님의
따뜻한 배웅을 받고 나와 여량의 전옥매할머니 댁(옥산장)에서 묵었다. 수석인이라 하니 마치 큰어머니처럼 맞아주시며 늦은밤 이었지만 손수 전시장을
열어 수석도 보여 주시고 방에 돌아와서는 돌 줍는 이야기, 돌 잊어버렸다 찾은 이야기, 유홍준 교수님과의 인연 이야기 등의 청산유수같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느지막히 잠이 들었다가 새벽 세시쯤 되어 화장실을 가려고 잠에서 깨었는데 왠일인지
화장실 문이 잠기었다. 열려고 부산을 떨면 아버지가 깨실 것 같아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여관 마당에 나오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하늘을 처다
보니 마치 온세상의 별들이 나에게 쏟아져 내리는 듯 하고 나는 거대한 텅 빈 우주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리랑이
있어 좋고 아름다운 돌밭과 좋은 작품을 위한 설레임이 있고 이제는 달려오면 반겨줄 벗이 있어 행복한 이 아름다운 정선의 밤은 쏫아져 내리는
눈송이처럼 하나씩 하나씩 소복소복 나의 가슴을 행복으로 채우고 있었다.
心安如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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